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지 펀드 (문단 편집) === 최초의 헤지펀드 === 최초의 헤지펀드는 1949년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Alfred Winslow Jones)가 운용하였다. 1900년에 태어난 존스는 아버지가 [[제너럴 일렉트릭]] [[호주]]점의 중역으로 부유한 [[금수저]] 집안이었다. 4살 때 미국으로 이주해서 1923년에 [[하버드]]를 졸업 후에 외교관이 되었는데, 1930년대 [[히틀러]] 치하 독일에 부[[영사]]까지 오를 정도였다. 그러다 아내를 만난 뒤 [[사회주의]] 성향을 가지게 되고[* 아내가 [[스페인 내전]]에서 [[퀘이커(종교)|퀘이커]] 교도를 위한 기금사업을 보도하던 [[기자]]였는데, 당시 스페인 내전은 사회주의자와 파시스트 세력간의 전쟁이었다.], 그 신념을 바탕으로 1941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얻고 1942년 [[포춘지]]에 취직했는데, 재무업계를 취재하다 "뭔가 어설픈 게 많은데....?" 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기자를 관둔 1949년에 자신의 아이 2명과 자신의 [[뉴요커]]스러운 호화생활을 위해 돈을 벌려고 했는데 예전 기자생활 때를 떠올려 직접 펀드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친구 4명에게서 6만달러, 자기가 4만달러를 출자해 펀드를 만든게 헤지펀드의 시초다. 존스는 이때 위험을 피했다는 '''Hedged Fund'''라는 말을 써서 원치 않게 헤지펀드의 최초 명명자가 되었다. 지금이야 헤지펀드의 수많은 기법이 열리면서 헤지와 관계가 미미해져 이름값을 못하지만, 존스는 이때 당시 아래에도 서술되었듯이 [[레버리지]]와 [[공매도]]를 섞어 시장에 노출되는 위험을 회피하고도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어내는 '''롱숏전략'''을 최초로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 자기도 인정하듯이 그 자신은 투자 선구안이 없었지만, [[레버리지]]로 롱과 쇼트를 동시에 구사해 종목 선구안과 관계없이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종목에서 안전하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법을 최초로 개발해 엄청난 수익을 낸 것이다. 물론, 그의 혁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서, '시장 전체의 변동'과 '개별 종목의 변동'을 구분하고, 여기에 시장의 변동률과 종목의 변동률의 퍼센티지를 구해 속도(Velocity)라는 이름을 붙혔다. 놀라운 건 10년도 더 뒤에 별개로 알파와 베타가 등장하는 [[CAPM]]가 등장해 [[재무관리]] 이론에 일약 혁명을 이루는데, 이걸 알기도 전에 이미 이런 진전을 이룬 것이다! 거기에다 펀드매니저가 거래안을 들고와서 실제로 수익을 냈을 때 [[인센티브]]와 성과보수를 부여하는 방안과, 펀드매니저가 자기 자본을 베팅(!)해서 성공했을 때 막대한 수익을 가질 수 있게 한 방안도 존스가 만들어낸 방안이다. 이 방안으로 재능있는 수많은 펀드매니저들이 대부분 존스의 펀드에 몰린 건 [[안 봐도 비디오]]다. 재밌는 건 이런 제도적 혁신은 그의 [[사회주의]] 성향이 발휘되어 이뤄진 것으로,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이 반대로 금융자본주의의 거대한 성장의 일익을 담당한 걸 보면 아이러니한 일. 그의 헤지펀드는 20년 넘게 운영되었고, 1968년의 펀드의 종합 수익률은 무려 '''4800%'''였다고 한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아래에 나오는 현대적 헤지펀드의 대부분의 특징을 존스 혼자서 모조리 만들어, 말 그대로 헤지펀드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존스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는지 반대로 헤지펀드의 존재 자체를 비밀로 붙이는 --하나도 안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유지했는데, 1964년 헤지펀드 직원들이 "배신"을 해 새로운 헤지펀드를 차리게 되어 헤지펀드의 명성이 월스트리트에 널리 울려퍼지게 되면서, 1966년 자기가 다녔던 [[포춘]]이 존스의 말을 인용해 "Hedged Fund"라는 이름을 붙이고 동네방네 홍보하게 된다.[* 존스 기법이 유출되지 않았으면 애초에 헤지펀드가 아예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이후의 헤지펀드들은 --자기들도 뒤통수 맞을까봐-- 입사하는 펀드매니저들에게 회사에서 배운 지식을 유출하지도 사용하지도 말라는 경업 금지 계약을 맺는 관행이 만들어진다.] 이 기사에서 존스 펀드의 수익률이 당대 최고로 알려졌던 드레이푸스 펀드의 수익을 87% 상회한다는 게 까발려지자 '''3년간 130개의 헤지펀드'''가 만들어지는 [[골 D. 로저|대펀드시대]]가 열렸다. [[조지 소로스]]의 첫 번째 펀드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 그 유명한 퀀텀펀드는 몇년 뒤에 만들어진다.] 이후로도 존스는 펀드를 운영하지만 기법이 널리 알려진 헤지펀드의 운명이 다 그렇듯이 수익률은 쪽박을 차게 된다. 나중에 존스는 펀드를 관두고 미국 평화 봉사단(Peace Corps)에 가입해 [[개발도상국]]을 발로 뛰어다니면서 도와주다 1989년 세상을 떠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